오디오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바로…

오디오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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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답은 스피커가 아님

어렸을 때 이런 놀이를 자주 하곤 했다. 아이들이 한줄로 선다. 그리고 처음 아이가 옆 아이한테 귀속말로 무슨 얘기를 한다. 그러면 그 아이가 다음 아이한테 귓속말로 같은 말을 전한다. 이런 식으로 마지막 아이한테까지 처음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놀이의 목적이다. 물론 이건 쉽지않다. 마지막 아이한테까지 가고나면 엉뚱한 말이 되곤 한다.

근데 오디오 기기의 목적이란 게 요거랑 똑같다. 원래의 신호에서 뭔가를 (1) 추가하거나 (2)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다음 단계에 전달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현상을 오디오의 세계에서는 노이즈 (=추가하기)와 왜곡 (바꾸기)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오디오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노이즈와 왜곡이 제일 심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 놈이다.

그렇다면 스피커가 제일 중요한 요소라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뭔가 다른 색이 입혀지고 신호가 바뀌는 일은 다른 기기보다 스피커에서 제일 많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스피커의 통, 우퍼, 트위터, 이런 것들은 항상 움직이므로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많다.

근데 턴테이블이나 CD 플레이어 같은 소스기는 어떨까? 활쏘기의 비유를 빌리자면, 소스기는 소리라는 화살이 날아가는 궤적의 출발점이다. 화살이 처음 활을 떠날 때 몇 밀리미터만 조준이 어긋나도 과녁에 도달할 때에는 엄청 벗어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오디오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소스기라 할 수도 있다.

물론 앰프를 업글했더니 하늘문이 열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는 케이블을 업글했더니 앉은 자가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의견이 다르다. 그러므로 이런 주장들 중 하나를 택하는 대신에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나의 관심, 즉 ‘마음의 눈’을 스피커, 앰프, 소스기 등등 내 에 있는 것들로부터 내 에 있는 것으로 시선을 돌려보는 것이다. 그러면 답이 나온다. 노이즈와 왜곡이 제일 많이 발생하는 곳은 바로 우리 머릿속이기 때문이다. 스피커, 앰프, 소스를 다 합친 거보다 훨씬 더 많이 발생한다.

돈 좀 써서 제대로 하는 오디오 취미를 우리는 하이파이 (Hi-Fi)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Fi는 Fidelity (=충실함)의 줄임말이다. 이건 입력된 신호에 대한 충실함을 말한다. 음악 듣기라는 경험이 최종적으로 일어나는 곳은 바로 머릿속인데, 우리의 머리는 절대로 입력된 신호에 대해 충실하지 않다. 어마어마한 노이즈와 왜곡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머릿속을 최적화하지 않는다면 내 오디오 시스템의 잠재력을 만끽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기기를 아무리 업그레이드하더라도 소용 없다.

좀더 명확한 설명을 위해 살짝 말을 바꿔보자. 머릿속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를 우리는 산만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머리에 떠오르는 갖가지 잡생각… 이것만큼 음악듣기를 방해하는 게 또 있을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으리번쩍하게 완성한 내 오디오… 다음에 그 앞에 앉아서 음악을 들을 때 내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들이 튀어나오는지 한번 관찰해보자. 그 생각들이 얼마나 다양하면서 엉뚱한지 놀라게 될 것이다. ‘이번 달 신용카드 돈은 냈나?’, ‘저 선반에 먼지 좀 봐’, ‘지금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면 얼마나 좋을까’… 끝도 없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내내 생각도 흘러나온다.심지어는 음악이 끝난 후에도 흘러나온다.

잠깐 정리하자면 우리는 여기서 노이즈와 왜곡, 이 두가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머릿속의 노이즈는 산만함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곡은 내 머릿속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그것은 바로 해석이다.

해석이란 내가 하고있는 경험에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베토벤의 음악이 신난다 (또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해석이다. 내 오디오의 음질이 죽여준다(또는 후지다)고 생각하는 것도 해석이다. 이 노래가 누군가를 떠오르게 한다고 느끼는 것도 해석이다. 음악을 들을 때 머릿속에서 하는 모든 해석은 음악을 왜곡시킨다. 긍정적인 해석이라도 그렇다. 모든 해석은 경험의 질을 떨어뜨린다. 왜냐하면 음악을 우리 멋대로 심리적 재구성을 해버리면 음악의 마법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맨날 그짓을 하고 앉아있다. 음악을 듣는게 아니라 생각을 듣는다. 공기의 진동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고 마음의 색안경을 통해서 경험한다. 이렇게되면  내 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소리 현상의 본질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므로 음악 감상 공간에 더할 수 있는 최고의 업그레이드는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앉아서 할 수도 있고, 서서 할 수도 있고, 라면을 먹으면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든지간에 명상의 의도는 똑같다. 명상의 의도는 마음에게 침묵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물론 이걸 익히는데엔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시간과 연습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내 경험이, 그리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마음이 침묵할 때, 진짜로 침묵할 때, 우리는 음악 속에 깃든 영혼과 훨씬 더 깊이 교감하게 된다. 음악에다가 이러쿵 저러쿵 인간의 말을 머릿속에서 더하는 일… 이 짓을 그만둘 때, 음악은 우리에게 그만의 모국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잠깐 상상해보자. 지금 우리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있다. 참 아름다운 별들… 근데 우리의 머리는 별을 보는데 집중하지  않고 별자리를 그리고 그 이름을 떠올리는 일을 시작한다. 별자리에 대해 아는 것은 흥미롭지만, 그것은 별들의 아름다움을 원초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방해한다. 어떤 현상을 가장 순수하게, 가장 깊게 경험하는 일은 별자리를 생각하지 않고 별을 볼 때 가능해진다. 공기의 진동이라는 현상을 경험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내 오디오 인생에서 제일 큰 업그레이드는 내 머릿속을 업그레이드했을 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업그레이드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지르기가 아니라 비우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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